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는 멋진 만남을 일깨워 주었다.

마쓰에 데쓰아키(松江 哲明)
영화감독



일본어 기사는 클릭⇒「われわれ! 日韓映画祭」は出会いの素晴らしさを教えてくれた

2011년 3월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하는 「한일신시대 : 함께 만들어 가는 미래」 사업의 일환으로 한일 공동제작 및 공동 출연, 한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프리미어」, 「클래식」, 「마스터」(최양일 감독 특별전), 「루키」(마쓰에 데쓰아키 감독 특별전)의 4개로 나누어 총 24편을 상영했습니다.
게스트로서 최양일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또 여배우이면서 프로듀서인 스기노 스키씨와 함께 영화제에 참가해, 상영 후 질의응답 등 관객과의 시간을 가진 마쓰에 데쓰아키 감독이 이번 행사에 대한 감상을 써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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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영화제 스태프들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맨 처음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에 방문을 했었고, 12년 전에는 <안녕 김치>의 촬영 때문에 다녀간 후에 TV취재, 영화제, 관광 등 몇 번이나 왔지만, 이번만큼 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에서 내 작품이 특집 상영된 것과 한국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체험한 것이 뜻 깊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는 참가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까지 여러 번 영화제에 참가했는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거나 수천 명 규모의 관객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전에는 정중한 연락을 받지만 막상 준비가 충분하지 않고, 작품의 감독으로서 "이 상태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건 좀 그렇네."라고 실망케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제1회」 영화제는 미지수다. 「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도 처음 개최되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프닝 상영에 참가하자마자 사라졌다. 작품 그 자체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영화제 스태프들. 100석이 조금 넘는 영화관이면서도 작품의 「관람」을 우선시한 상영설정. 그리고 섹스, 동정, 포르노 영화를 다루면서도 「특별전」이라는 타이틀로 관객과의 만남을 마련해 준 프로그래머.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영화사 「백두대간」의 대표 이광모감독( <아름다운 시절>, 1998년)은 나의 필모그래피만 보고 특별전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내 특별전이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최근 10년간 만든 6작품이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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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안녕 김치>(1999년)를 한국에서 상영했을 때에 찬반...... 내가 판단하기에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일본에서 상영했을 때도 어느 재일교포 1세 아주머니에게 "네 할아버지는 훨씬 고생했을 텐데 왜 그걸 그리지 않나"라고 지적하셨다. 나는 "이 영화는 재일교포 영화이기 이전에, 제 가족의 기록입니다."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알아주질 않았다.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더 자부심을 가지세요."라고 격려를 받아 당황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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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이스 만드는 여자들>(2003년) 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의 집을 방문해서 카레를 먹고, 거기서 하룻밤 머물고, 다음날 한층 더 맛있어진 카레를 먹고 이동하는 3박 4일의 기록이다. 카레를 만든다는 공통된 일이 여성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놀라면서 즐거웠던 촬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iden anna006.jpg <새끼라라>(2005년)는 원래 성인용 비디오로 제작되었다. 재일교포 3세인 여배우와 재일교포 2세인 남자 배우, 중국인 여배우 3명,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기록했다. 여배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남자 배우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서 관계를 가진다. 성인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연출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로 접하면 자극이 강하다. 그러나 나는 관계가 끝난 후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진심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그 순간에 태어나는 대사는 딱딱한 인터뷰에서는 결코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다.


童貞2~1.JPG <동정>(2007년)은 동정인 채로 20살을 넘긴 남자 2명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맡겨 자신들의 일상과 마음에 담고 있는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을 찍게 했다. DVD로 판매되지 않았지만 개봉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상영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동정」이라는' 남자라면 누구나가 직면하는 문제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名称未~1.JPG <안녕 유미카>(2009년)는 성인영화에서 활약한 고 하야시 유미카가 출연했던 한국산 포르노영화 <동경 유부녀 준코>를 소재로 했다. "왜 유미카는 이 작품에 출연한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한국과 일본의 포르노에 대한 차이, 유미카의 사는 방법,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면 존재 못할 라스트 신까지. 나 자신도 마치 드라마에 말려 드는 기분으로 3년에 걸쳐 제작했다.

ライブ~1.PNG최신작<라이브 테이프>(2009년)는 2009년 1월 1일에 뮤지션 마에노 겐타와 함께 내가 자란 마을 기치죠지(吉祥寺)에서 74분을 1컷으로 기록한 음악 다큐멘터리. 아버지, 할머니, 친구가 죽은 2008년, 나는 마에노의 노래만 듣고 있었다.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영화로 산다는 각오를 영화적 수법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당시 생각하고 있던 음악과 영화의 물음표를 20명의 스태프와 캐스팅의 힘을 빌림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질의응답시간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은 「안녕 유미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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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간 총 6작품이 상영되었는데, 작품이 상영된 후에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는 질의응답이 작품시간보다 긴 2시간 30분이나 이루어진 것도 있어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안녕 김치>에서는 "이제 김치 먹을 수 있어요?"라는 항상 나오는 질문이 나왔고, 섹스 장면이 많은 <새끼라라>에서는 "(출연한 남자 배우) 하나오카 씨가 귀여워요."라는 말과 더불어 지금까지 없었던 음악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도 있었다.
가장 내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작품이지만 연출을 일체 포기한 <카레라이스 만드는 여자들>이 가장 좋다는 여성도 인상 깊었다. 일본에서 <동정>을 상영하면 반드시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이 한국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에-!"라고 곤혹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라이브 테이프>에서 기뻤던 것은 영어와 한국어 자막에 대해 「좋았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가사의 번역은 나와 마에노씨가 또 다른 한편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고민했고, 또 번역가도 우리들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번역해 주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나는 한국에서 곧바로 번역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질의응답시간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은 <안녕 유미카>였다. 작품에서 표현 못한 부분, 일본의 성인영화에 대한 가치관, 유미카의 인생, 다양하고도 폭 넓은 질문에 대해서 나는 가능한 한 정중하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이 2시간이나 진행될 때쯤 한 여성이 손을 들어 "정말 재미있었어요. 여기 있는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연이은 질문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말해준 그녀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녕 유미카>는 한국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포르노를 다루고 있다. 이 소재가 얼마나 한국에서 미움 받고 있는지는 작품을 찍으면서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포르노도 핑크영화도 하나의 문화로서 안정 받고 있다. 따라서 자료를 모으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경 유부녀 준코>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사실은 한국에서 상영할 때에는 한 출연자의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있다. 한국에서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녕 유미카>를 한국에서 상영할 때에는 자못 긴장한 채 참가한다. 그러나 이 영화제에서는 본 작품을 폐막 작으로 선정하고, 「감사인사」까지 들었다. 감사를 드리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나 인데도.



「대지진」부터 1주일이 지난 무렵,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카메라로 기록했다.

관객과의 대화가 이만큼 성공한 것은 관객과 스태프들의 노력이 컸기 때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통역을 맡은 박민우 씨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연극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내가 이야기할 때의 특징이나 타이밍 조차도 통역 와중에 섞어 「재현」하는 것처럼 장내의 분위기를 띄웠다.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10여년 간 국내외 영화제에 참가했지만 이만큼 훌륭한 통역은 본 적이 없다. 번역이라는 일에 「연출」을 더해서 관객을 즐겁게 하는 사람과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나의 작품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화면상에서 주고 받는 대화에 자막해설, 게다가 내레이션까지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제한된 영어자막으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 "해외용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열의 있는 영화제와 뛰어난 번역가,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원하는 관객과 만남으로 작품은 또 빛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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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에 감독과, 통역 박민우 씨


<안녕 김치>가 극장에서 개봉된 지 10년이 지난 2011년에 한국에서 「만남」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는 일본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을 해외에 알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일본도 한국도 예술영화관의 상황이 좋지 않으며 큰 수익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독립영화라면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을 일본에서 상영할 때에 배급을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진행하고 있다. 영화관이 없는 마을이라면 홀이나 라이브하우스에서 상영하면 되는 것이다. 스크린과 재생기와 프로젝트, 스피커만 있으면 영화는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영화계에서 이단으로 취급 받지만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관객에게는 중요치 않다. 나는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과 상영하고 싶어하는 열성적인 의뢰인이 있다면 어떠한 조건도 거절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한국과 친해지고 싶다. 흥행가치나 수익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만나는 것. 이러한 멋진 만남을 이 영화제가 일깨워 주었다.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고 몇 번이나 머리 숙여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만남, 나는 앞에서도 쓴 것처럼 「정」을 느꼈다. 동일본 대지진을 체험하고 거리에서 모금을 위해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을 몇 번이나 보았고 스태프들도 귀국이 늦춰진 나를 걱정해 주었다.


대지진 후 1주일이 지난 무렵, 거리를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있던 비디오 카메라로 기록했다. 말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iPhone에 들어 있던 마에노 겐타의 앨범 『패밀리』 중의 1곡인 「새로운 아침」을 토대로 만든 영상은 귀국 후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아직 표현하지 못한 일본에 대한 생각, 위화감, 각오를 1년 안으로 발표하려고 한다. 그것은 한국에서 느낀 「정」을 토대로 만들어 질 것이다.


그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장편으로.




마쓰에 데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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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학교 졸업. 재일교포인 자신의 가족을 그린 셀프 다큐멘터리 <안녕 김치>로 한일청소년영화제감독상, 아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천파만파특별상 등을 수상. 성인영화 등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아이덴티티>는 재일교포 포르노 여배우와 포르노 남자 배우에 대한 다큐멘터리. 1신/1컷만으로 찍은 라이브 다큐멘터리영화 <라이브 테이프>(주연:마에노 겐타)가 제22회 도쿄국제영화제「일본영화•어느시점부분」작품상(2009년), 제10회닛뽄커넥션(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2010년)「닛뽄디지털어워드」를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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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에 감독이 한국에서 촬영한 영상은Hogaholic 웹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다









[와레와레! 한일영화제(Ware Ware ! Korea Japan Film Festival)] 개요
개최:2011년 3월 10일(목)~16일(일)
주최:일본국제교류기금, 영화사 백두대간, 주한일본대사관
장소: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자대학교 ECC)
후원:문화체육관광부, 한일문화교류회의, 서울재팬클럽
※[와레와레]일본의 우리들이란 뜻과 [오라]라는 한국어를 합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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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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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 감독과 이광모 감독. 영화제 오프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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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배너에 사인을 하는 스기노 키키 씨. 배너에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과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 사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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